2008년 09월 29일
"파생상품으로 하면 더 문제다" : 앨즈버그 역설과 불확실성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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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 요약: 앨즈버그 역설과 그 이후 발전된 불확실성 이론을 이용하면, 파생상품의 존재로 경제 주체가 느끼는 불확실성이 증가되었다는 가정 하에서, 경제 전체로 보면 파생상품이 리스크의 총량을 증가시키지 않았더라도, 주식시장이 좀더 망가지게 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것 같다.
1. 고지마 히로유키, "확률의 경제학"
파생상품이란 게 한 경제주체에서 다른 경제주체로 리스크가 매매되도록 하는 것일 뿐 경제 전체로는 리스크를 추가시키지도 않고 없애는 것도 아닌데, 왜 실제 시장의 반응은 더 거칠게 나타나고 있느냐가 지금 우리의 관심입니다.
지난 번에 그 문제에 대해 이런 저런 이유를 멋대로 끄적여 봤는데, 주말에 책을 읽다 보니 사실은 그 문제를 어느 정도 명쾌하게 해명해 줄 수 있는 모형이 이미 존재하더군요.
두 달 전쯤 사서 책장에 처박아 두기만 했던, 고지마 히로유키의 "확률의 경제학"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동경대학 수학과 출신에 동경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하고 지금 데이쿄대학 경제학과 교수를 하는 분이더군요. 경력 중에서 동경대 수학과 출신이란 게 제일 마음에 들었구요. ^^ 일어판은 2004년에 나온 책인데, 그 책의 5장과 2008년 2월의 한국어판 서문을 읽으면서 생각해보니 앨즈버그 역설과 나이트의 불확실성 이론을 이용하면 "왜 파생상품으로 하면 더 문제인가"에 대해 좋은 설명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왕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번 정리해 보지요.
2. 앨즈버그의 역설
항아리 A에 빨간 구슬 50개와 파란구슬 50개가 들어있습니다. 색깔 하나를 먼저 소리 내어 외친 다음 눈을 감고 구슬 하나를 꺼냅니다. 꺼낸 구슬의 색깔이 자기가 먼저 외친 색깔과 같으면 상금을 받고 다르면 꽝입니다. 상금을 받을 확률은 50%지요. 자, 이제 항아리 B가 있는데 항아리 B에도 두 가지 색깔의 구슬로만 100개가 들어있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빨간 색깔이 몇 개이고 파란 색깔이 몇 개인지는 알려주질 않습니다. 항아리 B를 가지고 항아리 A에서와 동일한 구슬 색깔 맞추기 게임을 한다고 합시다.
항아리 A를 택해서 게임을 하든 B를 택해서 게임을 하든 상금의 기대 값은 같습니다. 기대 값만 같을 뿐 아니라 노이만과 모겐슈턴(Neumann & Morgenstern)의 기대효용도 정확히 일치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항아리 A를 택해 게임 하려 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실제 행동이 기대효용 극대화의 가설이 일치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앨즈버그의 역설이라 한답니다.
노이만과 모겐슈턴이 보여준 “세인트 피터스버그 역설”을 통해 기대값 극대화(expected value maximization) 가설이 폐기되고 기대효용 극대화(expected utiliy maximization)의 가설 위에서 현대 재무론이 성립됐는데 이제 앨즈버그의 역설로 그 기대효용 극대화의 가설이 유효하지 않은 경우가 있음이 보여진 것입니다.
앨즈버그의 역설은 "확률을 아는 불확실성"과 "확률을 모르는 불확실성" 사이에 뚜렷한 선호의 차이를 보인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확률을 아는 불확실성과 확률조차 모르는 불확실성을 처음 구분한 것은 1920년대의 나이트(Frank Knight)라고 합니다. 이 때문에 앨즈버그의 실험 이후, 확률분포조차도 모른다는 의미로서 리스크와 구별되는 불확실성에 대한 연구를 "나이트의 불확실성 이론"이라고 한답니다.
3. 비가법적 확률이론
앨즈버그 역설이 관찰되는 현실을 합리화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알던 확률론과 다른 확률론을 도입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우선, 항아리 A에서 확률 p를 보면, p(빨강) = p(파랑)= 0.5이고 p(빨강&파랑)= p(빨강) + p(파랑) = 1 이지요.
다음, 항아리 B에 적용할 확률 기호를 v라고 해 보지요. v(빨강&파랑) = 1 인 것은 분명하고, 빨강이든 파랑이든 어느 쪽도 우위에 있지 않다는 점에서 v(빨강) = v(파랑) 이어야할 필요도 분명하지요. 그런데, 앨즈버그 역설에서 관찰되는 바에 의하면 p(빨강) > v(빨강), p(파랑) > v(파랑) 이니까 1 = v(빨강&파랑) > v(빨강) + v(파랑) 이어야 하네요.
우리가 이전에 알던 확률론에서는 서로 배반인 두 사건이 발생할 확률은 각각의 사건이 발생할 확률의 합이었습니다. 즉 가법성(additivity)이 성립했고 이걸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어야 하는 공리(axiom)로 취급했지요. 즉, p(빨강&파랑)= p(빨강) + p(파랑). 그런데 앨즈버그 역설을 합리화 하기 위해서 도입한 v로 표기한 확률론에서는 이런 가법성을 무너뜨려야 하게 되네요. v(빨강&파랑) > v(빨강) + v(파랑).
이런 '비가법적 확률 이론'이 처음 도입된 것은 양자 역학이었다고 합니다. 후에 데이비드 슈마이들러(David Schmeidler)라는 사람이 이 '비가법적 확률이론'을 앨즈버그 패러독스로 대표되는 불확실성 회피성향을 설명하는데 성공적으로 도입했다고 합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여기에서 "불확실성"이란 확률분포를 모른다는 의미에서 확률분포를 아는 "리스크"와 구별되는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위 항아리의 예에서 보면 비가법적 확률이론은 놓친 열차가 아름답고 남의 떡이 커보이는 것처럼, 선택하지 아니한 것을 더 높게 평가하는 성향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파란 구슬을 선택하려니 빨간 구슬이 나아보이고, 빨간 구슬을 선택하려니 이번에는 파란 구슬이 나아보이는...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불확실성 하에서는 불확실한 상황에 대해 복수의 경우의 수를 상정하고 각 경우 중 최악의 상태가 최대로 되도록 하는, 이른바 최소극대화의 원리(maxmin principle)를 선택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빨간 구슬을 선택할 때 빨간 구슬이 적은 안 좋은 상황을 가정해 보고, 또 파란 구슬을 선택할 때 파란 구슬이 적은 안 좋은 상황을 가정해 보고 각각의 안 좋은 상황에서 최선의 방안을 구하는 선택을 한다는 것이지요. 사실, Gilboa & Schmeidler는 이런 최소극대화의 원리가 비가법적 확률이론과 동일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
Schmeidler, D., Subjective Probability and Expected Utility without Additivity, Econometrica 57, 1989
Gilboa, I. and Schmeidler, D., Maximum Expected Utility with a Non-unique Prior. Journal. of Mathematical Economics 18, 1989
이상이 고지마 히로유키가 제5장에서 "나이트의 불확실성 이론"을 소개하면서 설명한 비가법적 확률론의 내용입니다. 저자가 2008.2월에 쓴 한국어판 서문을 보면, 자신이 5장에서 설명한 "나이트의 불확실성 이론"을 활용하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의 세계적인 주가하락 현상을 기존의 확률 이론에 비해 훨씬 잘 설명할 수 있다고 설명없이 간단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설명을 제가 조금 붙여보겠습니다.
4. 왜 파생상품으로 하면 더 문제인가
이번 서브프라임 사태가 일어나면서 흔히 언론에서는 "증권화와 파생상품을 통해 위험이 이곳 저곳으로 옮겨다닐 수 있게 되어 리스크가 훨씬 커졌고 그래서 주식시장이 폭락한다"는 식의 논평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논평을 기본적으로는 잘못 된 것으로 생각해왔습니다. 경제 전체적으로 보면 경제주체 간에 리스크가 거래된 것일 뿐 리스크의 총량에 차이가 없는데 "리스크가 거래되기 이전의 자본자산 가격의 합계"와 "리스크가 거래된 이후의 자본자산 가격의 합계"가 달라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재무론의 가격결정론의 핵심을 이루는 아비트리지 논리(arbitrage argument)상 그래야 맞다고 생각한 거지요. 그랬기 때문에 이전 글에서 주저리 주저리 다른 이유를 생각해 봤던 거지요. 어떠튼 주식시장이 폭락하는 현상만은 실제적인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위의 비가법적 확률이론에 따르면, "파생상품 거래 전후 경제 전체의 위험 총량에 변함이 없더라도 파생상품의 거래 내역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면 리스크가 거래되기 전과 그 후의 자본자산 가격 합계에 차이가 있다"는 말이 성립될 것 같습니다.
경제 내에 증권 X와 증권 Y만 있다고 가정합니다. 기존 재무론에서 상정하는 대로 X, Y 각각에 대해 모든 상태(state)에서의 현금 흐름과 그 확률분포를 알고 있다고 가정합니다. 여기서 두 회사 간에 파생상품이 거래됐다면 그건 특정한 확률분포를 가진 현금 흐름이 한 회사에서 다른 회사로 넘어간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거래 내역이 명확하게 공개 된다면, 모든 상태에 대하여 두 회사의 현금 흐름의 합계는 거래 전후에 변동이 없으므로 파생상품 거래 전후 두 개의 자본자산의 합계는 동일해야 합니다. price(X*)+price(Y*) = price(X) + price(Y) = price(X + Y).= price(X* + Y*). (여기 *는 파생상품 거래 후를 표시)
그러나 만일 두 회사 간에 현금 흐름의 확률분포가 거래된 사실만 알고 그 규모가 명백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면, 즉 파생상품이 거래됐다는 사실은 알고 있으되 그 규모를 정확히 모른다면, 해당 기업들의 "리스크" 상황이 "불확실성" 상황으로 전환되는 것이므로, 위의 비가법적 확률이론에 의하면 price(X*)+price(Y*) < price(X) + price(Y) = price(X + Y) = price(X* + Y*). 이런 식으로 나오게 될 것 같습니다. 즉 파생상품 거래 후의 자본자산 가격의 합계는 그 이전의 가격합계에 비해 하락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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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8/09/29 16:53 | 경제 | 트랙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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